매년 11월 19일은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도모하고, 범국민적으로 아동학대의 예방과 방지에 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아동복지법 제23조가 정한 ‘아동학대예방의 날’이다.
‘아동학대예방의 날’은 내게 매우 의미 있는 날이다.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근무하며 수 년간 아동학대 현장에서 수많은 학대피해아동들을 만나왔기 때문인지, 그날이 되면 마음이 숙연해지고 결연한 의지가 생기기도 한다. 그리고 그날만큼은 그동안 만났던 학대피해아동들을 하나씩 떠올려본다.
민호(가명)도 그중 하나다. 당시 초등학교 4학년 민호는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. 엄마, 아빠가 모두 가출을 한 상황에서 할아버지는 홀로 민호를 돌보셨다. 그러나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민호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고, 밤늦게까지 동네를 배회하기 일쑤였다.
그럴 때마다 할아버지가 선택한 방법은 체벌이었다. 민호의 문제행동들이 하나씩 늘어날 때마다 체벌의 강도는 더 커져만 갔다. 결국 할아버지는 민호가 아예 밖에 나가지 못하도록 쇠사슬로 민호의 두 다리를 묶어 놓았고, 이를 우연히 본 이웃 주민은 할아버지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했다.
당시 아동보호전문기관 초짜 상담원이었던 나는 그렇게 민호를 처음 만났다. 할아버지에게 얼마나 맞았는지 온몸이 퉁퉁 부어 있고, 쇠사슬에 두 다리가 묶여 있던 민호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.
결국 민호는 집이 아닌 아동복지시설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고, 할아버지도 지난 행동들을 반성하며 양육 상담과 심리치료 등에 열심히 참여했다. 민호와 할아버지는 다시금 함께 지낼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며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.
◇ 학대피해아동을 발견하고 신고하는 것은 국민 모두의 의무
이후 내가 다른 기관으로 발령을 받아 그 이후 상황들은 잘 모르지만, 아마도 민호도, 할아버지도 잘 회복돼 행복을 되찾았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.
보건복지부 ‘2019 아동학대 주요통계’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아동학대 발견율은 3.81‰로, 전년도에 비하면 0.83‰ 증가했다. 하지만 미국, 호주 등 주요 선진국들의 아동학대 발견율이 9‰을 상회하는 것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.
특히, 굿네이버스 ‘2020 아동 재난대응 실태조사’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가정 내에서 아동학대 위험상황을 겪은 아동이 약 5~10%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, 코로나19 이전 대비 가정 내 아동학대 위험성이 크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.
한편, 코로나19 확산이 가장 심각했던 지난 2~4월 아동학대 신고건수는 약 20%나 감소했다. 이는 아동학대 사건 발생이 감소한 것이 아니라, 아동들이 주된 신고의무자인 교사, 보육교사 등과 만날 수 없어 학대피해아동을 발견할 수 있는 확률이 낮아진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.
그렇기 때문에 아동학대예방에 대한 국민 모두의 관심이 중요하다. 학대피해아동을 발견하고 신고하는 것은 국민 모두의 의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. 어쩌면 오늘 만난 그 아이가 학대피해아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.
아동학대예방의 날을 맞아 이제는 성인이 되었을 민호를 떠올리며, 그리고 그동안 만났던 수많은 아이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힘들었던 과거를 잊고 앞으로는 행복한 삶만 살아가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해본다.
*칼럼니스트 고완석은 여덟 살 딸, 네 살 아들을 둔 지극히 평범한 아빠이다. 국제구호개발 NGO인 굿네이버스에서 14년째 근무하고 있으며, 현재는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옹호팀장으로 일하고 있다.
[자료출처 : 베이비뉴스 칼럼니스트 고완석]